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(문단 편집) ==== 분열과 난맥상 =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맥거번 험프리 머스키 1972.jpg |width=100%]]}}} || || '''1972년 경선의 프론트러너인 맥거번, 험프리, 머스키''' || 공화당과 반대로 민주당은 혼란 그 자체였다. 당시 민주당은 당권을 잡고 있던 존슨파[*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았으며, [[뉴딜연합]]을 계승했다. 1972년 당시 실질적인 영수는 [[휴버트 험프리]]. 주요 구성 인물은 [[에드먼드 머스키]], [[월터 먼데일]]. 21세기 민주당의 현대자유주의 파벌의 전신이다.], 진보파[* 대학생과 반전좌파의 지지를 받았다. 당시 영수는 [[테드 케네디]] 상원의원이었으며 [[조지 맥거번]], [[유진 매카시]]. 21세기 민주당의 진보주의/사회주의 파벌의 전신이다.], 남부 민주당파[* 당내 보수파였으며, 비주류에 속했다. [[조지 월리스]], [[지미 카터]] 등이 이에 속했다. 21세기 민주당의 온건파 파벌의 먼 조상 중 하나이지만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다.]로 분열되어있었고, 각자 서로 다른 후보와 정책을 내고 싶었기 때문에 좀처럼 당이 단결되지 못했다. 또한 [[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]]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출범한 맥거번-프레이저 위원회의 경선 룰 변동[* 이때 슈퍼 대의원 제도를 비롯해 우리가 아는 현대적인 경선 제도 대부분이 도입된다. 이 제도는 [[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]]에서야 비로서 빛을 발하게 된다.]도 혼란을 가속화시켰다. 이 당시 후보들을 정리하자면 좌익에는 존 린지 뉴욕시장[* 본래 [[록펠러 공화당]]원이었으나 닉슨의 보수 정책에 반발하여 민주당에 입당했다. 여러 진보적인 정책으로 68혁명 시위대에게 지지받았지만 미흡한 뉴욕시정과 엘리트 이미지 때문에 지지를 깎아먹었다.], [[유진 매카시]] 상원의원, 셜리 치좀 하원의원[*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 후보자로, 유명한 [[자유주의 페미니즘]] 운동가이기도 하다. 베티 프리단,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1960년대 저명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철학자들의 동료였다. 다만 당시 세력을 키우던 [[래디컬 페미니즘]] 진영에서는 너무 유순하다고 비판받기도 했다.], [[조지 맥거번]] 상원의원, 밴스 하트케 상원의원[* 인디애나의 반전파 상원의원이었으나 지역이 원체 보수적인 탓에 1976년 선거에서 19% 차로 패배했다.], 프레드 해리스 상원의원[* 민주당의 젊은 포퓰리스트로서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오클라호마 진보파 민주당원이었다.닉슨의 정적 리스트에도 오를 정도였다. 현재 93세의 나이로 전현직 상원의원 중 가장 선임이라고 한다.], 팻시 밍크 하원의원[* 최초의 유색인종 하원의원으로서 성차별 반대에 여러 업적을 세웠다.]이 있었고 중도에는 [[에드먼드 머스키]] 상원의원, [[휴버트 험프리]] 상원의원, [[헨리 M. 잭슨|헨리 "스쿱" 잭슨]] 상원의원[* 자유주의자였지만 외교 문제에서는 닉슨보다도 한술 더 뜬 초강경 멸공주의자라 닉슨 내각에도 초청받곤 했다. 이 때문에 베트남전쟁을 지지한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지미 카터가 전당대회에서 지지하기도 했다. 이 사람 지지자들이 10년 뒤에 [[네오콘]]이 된다. 별명으로는 "보잉의 상원의원"이라고도 불렸다.]이 있었고 우익에는 [[조지 월리스]] 앨러배마 주지사, 윌버 밀스 하원의원[* 오랜 하원의원 경력으로 민주당 내에서 인망이 높았던 인물로, 맥거번은 자신이 당선되면 윌버 밀스를 재무장관으로 앉히겠다고 약속했다.], 샘 요티 LA 시장[* 조지 월리스와 마찬가지로 우익 대중주의자였는데, 1973년에 [[존 코널리]]를 따라 공화당에 입당했다.] 등이 있었다. 물론 프론트러너라고 할 만한 인물은 [[에드먼드 머스키]] 상원의원, [[휴버트 험프리]] 상원의원, [[조지 월리스]] 앨러배마 주지사, 그리고 경선에 대해 말을 아끼던 [[테드 케네디]] 정도였으나 하도 참가자가 많았기에 경선은 혼란 그 자체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